계은숙은 수많은 사건과 사고들로 얼룩졌던 과거를 뒤로하고, 최근 다시 한번 가수로서의 활동을 이어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녀는 처음 광고 모델로 얼굴을 비쳤고,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곧바로 가수로 전향하여 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계은숙의 어린 시절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아버지 없이 명동 증권가에서 작은 매점을 운영하던 어머니는 홀로 계은숙과 언니를 키우며 싱글맘으로 살아갔다. 계은숙은 12살 때부터 어머니를 돕기 위해 물건을 팔며 힘든 가정사를 견뎌야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았고, 계은숙은 중학생이 되어서야 어머니의 지인으로부터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계은숙은 크게 배신감을 느끼며 방황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 후 은사님을 통해 가족의 뿌리를 찾아가며,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고, 어린 마음에 어머니와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하고 싶었지만, 그 일은 어머니의 큰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그날 이후 계은숙은 어머니와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어머니는 625 전쟁 이후 아버지와 결혼했지만, 아버지가 이미 본부인이 있었음을 알게 되면서 결국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했다.
계은숙은 자신이 어머니께 잘못한 것을 깨달으며, 아버지와의 만남을 더 이상 이어가지 않기로 결심하고, 어머니 곁에서 딸로서 살아가기로 다짐했다. 그 후 그녀는 방황을 끝내고 학교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선생님은 그녀에게 가수를 권유했다. 이때 처음으로 가수라는 꿈을 가지게 된 그녀는 성수여중 후배의 아버지의 도움으로 데뷔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국내 활동은 순탄하지 않았다. 1978년에 데뷔한 후 3~4년간 활동을 이어가던 계은숙은 일본으로 건너갔다. 사실, 그녀는 KBS와 MBC에서 출연 금지 처분을 받기도 했고, 전국공연 단체 연합회에서 무기한 출연 정지를 결의하기도 했다.
당시 그녀는 방송 활동에 집중하지 못했는데, 그녀의 개인적인 문제들이 그 원인이었다. 그녀는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하고 싶었지만, 그 남자는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그녀를 떠나게 되었다. 그로 인해 계은숙은 큰 상처를 받았고, 방송에 펑크를 내기도 했으며, 점차 한국 방송사에서 설 자리를 잃어갔다. 이후 일본에서 활동을 시작하며 화려하게 복귀했다. 일본에서 첫 곡이 인기를 끌면서 그녀는 일본의 홍백가합전 7년 연속 출전이라는 대기록을 세웠고,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또 다른 도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동안 그녀의 일본 팬들은 그녀에게 귀화를 강요했고, 그녀가 한국 국적을 고수하자 일부 일본인 팬들 사이에서는 그녀에 대한 비판이 일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은숙은 일본에서의 인기를 누렸으며, 1992년에는 일본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녀의 결혼식에는 일본의 유명 연예인들이 참석했지만, 결혼은 6년 만에 끝나고 말았다. 결혼 후 스트레스와 여러 어려움으로 인해 두 사람은 결국 헤어지게 되었고, 그 후 그녀는 여러 가지 루머와 사건에 휘말리며 추락하게 되었다.
특히 2006년, 일본 전국 투어 중 마약 사건이 터졌다. 당시 그녀가 복용한 약물은 사실 마약이 아닌 각성제였지만, 그녀는 이 약물로 인해 중독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은 그녀와 소속사, 그리고 야쿠자와의 연관설까지 불러일으켰고, 결국 그녀는 일본에서 추방당하게 된다. 일본에서의 활동을 마친 계은숙은 2008년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사기 사건에 연루되며 다시 한 번 입방아에 오르게 된다.
2013년, 계은숙은 서울의 포르세 매장에서 차를 리스하려 했으나, 신용조회 결과 차를 구입할 수 없게 되자 가짜 계약서를 제출했다는 사건에 연루되었다. 이 사건은 그녀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혔고, 결국 유죄 판결을 받게 되었다. 2015년에는 일본에서 추방된 지 7년 만에 다시 마약 사건으로 실형을 살게 되었다. 그동안 그녀는 여러 어려운 시기를 겪었고, 구치소에서도 깊은 후회와 미안함을 표현하며 울었다.
계은숙의 인생은 그야말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여정이었다. 그녀는 여러 차례 시련을 겪으며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고, 지금은 과거의 아픔을 딛고 새롭게 활동을 시작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