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미쳤었다…” 범죄 사실 알고도 범죄자와 결혼한 여가수의 최후

민해경은 1962년 대구 달서구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백미경이다. 어린 시절부터 극심한 가난에 시달린 민해경은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노래를 시작했다. 그녀는 10대 시절, 가족의 생계를 위해 밤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그녀가 어린 나이에 나이트클럽에서 노래를 부른 이유는 가족을 돕기 위한 것이었다. 민해경은 한 인터뷰에서, 가수가 되겠다는 결심을 고등학교 시절 학교 선배의 권유로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처음엔 돈이 없어서 꿈을 포기할까 했지만, 선배는 그녀에게 야간 업소에서 노래를 부르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알려주었다. 겁이 나기도 했지만, 민해경은 가난을 벗어나고 싶어 교복을 입고 무대 사장님에게 오디션을 보러 갔다. 그녀는 노래 실력이 뛰어나서 바로 무대에 서게 되었다.

그녀가 나이트클럽에서 노래하며 하루에 벌었던 금액은 3만 원이었다. 당시 공무원의 평균 월급이 약 15만 원이었음을 고려하면, 민해경은 10대 때부터 꽤 큰 돈을 벌어 오남매와 부모님을 부양했다. 그녀의 형제자매들도 모두 연예계와 관련된 일을 하게 되었다. 민해경의 큰오빠는 부활의 음악 프로듀서를 맡았으며, 둘째 오빠는 부활과 블랙홀의 매니저로 활동했다. 민해경은 김태원에게 곡을 받은 적도 있다고 한다. 또, 그녀의 언니는 가수로 활동했으나 큰 인기를 얻지 못했으며, 남동생도 예명 ‘신의찬’으로 가수 활동을 했었다.

민해경은 어린 시절부터 반무대 활동을 하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무교동 청개천의 한 업소에서 유명해졌지만, 그 시절을 회상하며 그 때의 고통과 힘듦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손님들 중 남성들의 추근덕거림과 못된 행동으로 많은 고통을 겪었다. 그녀는 이 경험을 통해 “밤무대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그 힘듦을 모른다”고 말했다. 어릴 적부터 차가운 성격을 가진 민해경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더욱 냉정해졌고, 이를 통해 밤무대에서의 불쾌한 경험들을 견뎌낼 수 있었다.

그 후, 민해경은 서울 가요제에 참가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누구의 노래일까’라는 곡으로 가수로서의 기회를 잡았다. 비록 서울 가요제에서 입상은 하지 못했지만, 이 경험을 통해 정식으로 앨범을 내게 되었고, 1980년대에는 발라드와 댄스를 넘나들며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1983년, 23세의 나이에 요정 출입 스캔들로 방송 출연 금지 조치를 받게 된다. 이 사건으로 그녀는 가수 활동을 멈추게 되었고, 당시에는 너무 억울하고 괴로워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민해경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여러 차례 탄원서를 제출했고, 1984년 1월, 결국 방송 출연 금지가 풀리게 되었다.

이후 일본으로 진출을 시도했으나, 일본에서는 큰 반응을 얻지 못하고 실패하게 된다. 그럼에도 그녀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복귀하며, ‘사랑은 이제 그만’이라는 노래로 성공적인 복귀를 이뤘다. 10대 시절부터 생계를 위해 힘들게 활동하던 민해경은 번아웃을 경험하게 되었다. 너무 힘든 일상 속에서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가족을 부양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았기 때문이다. 그 후, 그녀는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고 느끼고 미국으로 떠나려 했지만, 가족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고쳐먹었다. 민해경은 밤무대를 계속하며 돈을 모았고, 그 과정에서 한 카페 알바생과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그저 가벼운 만남이었지만, 점차 두 사람은 서로에게 끌리게 되었다.

그 후, 민해경은 이 카페 알바생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결혼까지 약속하게 된다. 그러나 민해경의 남편에게 대마 사건이 터지면서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히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해경은 남편을 사랑했고, 결국 결혼을 하게 되었다. 이렇듯 민해경은 힘든 과거를 극복하고 사랑을 찾았지만, 여전히 많은 시련을 겪으며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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