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청춘 스타이자 만능 엔터테이너로 이름을 날렸던 가수 전영록은 큰 인기를 누리던 시절에 가수 활동을 갑자기 중단했습니다. 전영록은 1954년 3월 26일생으로 올해 69세이지만, 50대 초반으로 보일 정도로 동안 외모를 자랑합니다.
리즈 시절과 현재의 외모가 크게 다르지 않은데요. 전영록은 스스로를 스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부모님이 워낙 대스타였기 때문에 자신은 그 벽을 넘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평범하게 동네 시장도 다니고 택시도 타고 대중목욕탕도 거리낌 없이 다닌다고 합니다. 하지만 80년대에는 전영록이 하는 모든 것이 유행이 되었습니다. ‘종이학’을 발표하자 전국의 여학생들이 종이학 접기에 열광했고, 그가 뿔테 안경을 쓰자 모든 남학생들이 안경점으로 달려갈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1992년부터 전영록은 갑자기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 탤런트 이미영과의 이혼과 함께 슬럼프가 찾아왔고, 그 후 제대로 재기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진정한 만능 엔터테이너 전영록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전영록은 80년대 가왕 조용필의 라이벌이자 영원한 젊은 오빠였습니다. 우리는 흔히 재주가 많은 사람을 팔방미인이라고 하는데, 재주꾼들만 모이는 연예계에서도 80년대를 가장 풍미했던 팔방미인은 전영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수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전영록은 1985년 탤런트 이미영과 결혼했습니다. 이미영은 당시 ‘미스 해태 선발대회’에서 대상을 받고 MBC ‘사랑의 계절’에서 보이시한 불량 소녀 역할로 주목받는 스타였습니다.
두 사람은 2년간 연애 후 결혼했고, 당시 최고 인기 가수와 탤런트의 결혼은 대중의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전영록 이미영 커플은 첫째 딸 전보람, 둘째 딸 전우람을 낳고 행복하게 사는 듯했지만 1997년 이혼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전영록이 이미영과 이혼 후 바로 재혼해서 힘들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만, 사실 전영록은 두 딸의 양육권을 가져 아이들을 데리고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당시 아이들이 사춘기였기 때문에 더욱 힘들었다고 합니다.
전영록은 두 딸을 키우기 위해 부산으로 가서 라이브 카페를 전전하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당시 여론이 전영록에게 좋지 않았기 때문에 노래를 부르면 사람들이 음식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이혼 후 음식을 던지는 사람들을 보며 화가 난 전영록은 무대 아래로 내려가 자신은 자식을 버리지 않았다고 소리쳤다고 합니다.
처자식을 버리고 젊은 여자와 살려고 부산으로 내려왔다는 루머까지 돌았고, 이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재혼했기 때문에 당시 얼마나 많은 루머가 돌았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전영록은 16살 연하의 임주연 씨와 재혼했는데, 임주연 씨는 전영록의 팬이었다고 합니다.
전영록이 이혼한 후 두 사람은 가까워졌고 연인으로 발전해 재혼했습니다. 전영록과 가정을 꾸린 임주연 씨는 결혼 3년 만에 집을 장만했고, 지금까지 두 사람은 행복한 가정을 꾸려 잘 살고 있습니다. 이미영은 두 딸의 양육권을 포기하고 가장 힘들었다고 하는데요.
양육권을 포기한 이유는 이미영 어머니의 결단 때문이었습니다. 아마도 딸이 새 출발 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던 것 같습니다. 이미영은 이혼 후 1년 동안 매일 술로 살았고, 그러다 두 번째 남편을 만났지만 그녀의 재혼은 이혼으로 끝났습니다.
이혼을 선택한 이유는 두 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19년 말에 엄마의 품으로 돌아온 딸들을 꼭 지키고 싶어 이혼을 선택했고, 이혼 후 딸들과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었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이미영은 TV에 출연해 전영록에 대해 “나에게 따뜻하게 대하고 내 이야기를 모두 들어주려고 노력하고 나에게는 정말 재미있고 완벽한 사람이었다.”라며 여러 가지 문제로 이혼했지만 용서하겠다고 전했습니다.
전영록은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2010년에 대장암과 직장암을 동시에 발견하면서 방송 활동을 쉬고 치료에 전념했습니다. 다행히 수술이 잘 되어 완치되었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유튜브 ‘전영록TV’를 개설하고 자신만의 음악을 개발하며 활발하게 음악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