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트넘은 결국 구단 창단 이래 최악의 실수를 저질렀다. 손흥민을 잃게 되자 뒤늦게 사태를 수습하려 했지만, 이미 재계약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오만전 3대1 승리 후 곧바로 귀국한 손흥민은 토트넘에 복귀하자마자 포스테코글루 감독으로부터 이상한 역할을 부여받았다. 도미니크 솔란케가 복귀하든 말든 손흥민이 왼쪽 윙어로 돌아올 것이라고 모든 전문가가 예상했으나, 그는 기존의 윙포워드 자리도 아닌, 윙어인지 풀백인지 모를 애매한 포지션에 배치되었다.
이는 토트넘이 공개한 훈련 영상에서도 드러났다. 공격 훈련 영상 속에서 선수들이 패스를 주고받으며 골을 노리는데 손흥민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그가 2선보다 훨씬 내려온 위치에서 간간이 눈에 띄는 모습만 확인할 수 있었다. 공이 수비에 막혀 뒤로 흐를 때만 백업하는 듯한 역할을 했고, 심지어 수비수인 반더벤도 공격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는데, 손흥민은 그 어디에도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이에 영국 현지 매체들도 의아해하는 반응을 보였다.
지난 시즌 말부터 폼이 올라오지 않고 있는 메디슨이 거의 원톱처럼 뛰는 상황에서도, 손흥민은 후방 중앙 부근에서 마치 센터백처럼 서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심지어 지난 시즌 2군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은 2005년생 유망주 윌랭크셔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상황에서 손흥민이 찬밥 신세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논란이 거세지자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손흥민을 다각도로 활용할 가능성을 점검하고 있다고 해명하면서도, “토트넘에 필요한 위치에 따라 그가 뛸 곳이 정해질 것”이라는 다소 애매한 발언을 내놨다. 더 큰 문제는 그다음 발언이었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A매치에 다녀온 선수들에 대해 언급하며, 부상 중인 반더벤과 솔란케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루면서도 손흥민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특히 손흥민을 대체할 유력한 자원으로 여겨지는 솔란케를 핵심 공격수로 치켜세우며, 그의 부상 회복이 토트넘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는 듯한 발언으로 손흥민을 의도적으로 무시한다는 비난을 자초했다.
현실은 더욱 냉혹했다. 올 시즌 들어 즉각 재계약이 이뤄질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손흥민을 전력에서 제외하는 듯한 토트넘의 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한편, 벤탕쿠르는 지난 6월 우루과이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아시아인 모두가 비슷하게 생겼다는 명백한 인종차별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으나, 토트넘은 지금까지 어떠한 해명도 내놓지 않았다. BBC에 따르면, FA는 인종, 출신국, 성별 등에 따른 차별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으며, 벤탕쿠르의 부적절한 언행은 FA 규정 제3조 1항을 위반해 최대 12경기 출전 정지 처분을 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과거 손흥민이 인종차별적 발언을 들었을 때 크리스탈 팰리스 팬이 3년 경기장 출입금지 처분을 받았던 것과 비교하면, 이는 매우 다른 대처 방식이었다. 더 충격적인 건, 재계약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계약 연장 1년은 보장한다던 토트넘이 이를 파기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손흥민의 계약 만료까지 9개월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토트넘은 로메로와의 재계약 추진을 메인 이슈로 내세우며, 손흥민과의 재계약에 관심이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는 구단들이 방출 직전 자주 쓰는 방법이지만, 손흥민의 기여도를 고려하면 최악의 작별 방식이었다. 그런데 다음날 훈련 중 손흥민의 태도는 토트넘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는 마치 소속팀 선수가 아닌 것처럼 소극적으로 훈련에 참여했고, 훈련 내내 에이전트와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주장답지 않은 행동을 보였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손흥민을 급히 공격 훈련에 참여시키려 했지만, 그는 컨디션 문제를 이유로 빠르게 훈련장을 떠났다. 그제야 토트넘은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몇 시간 후, 런던을 강타한 충격적인 뉴스가 전해졌다.
영국 코트 오프사이드는 12일, 토도피차헤스의 보도를 통해 2025년에 계약 기간이 만료될 예정인 손흥민의 상황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주시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구체적인 보도에 따르면, 아틀레티코는 그리즈만의 대체자로 손흥민을 영입할 계획을 밝히고 있으며, 손흥민의 에이전트가 재계약 난항에 불만을 품고 빠르게 움직였다는 것이다. 영국 주류 언론들은 손흥민의 에이전트가 이미 스페인으로 날아가 비공식적인 협상을 마쳤다고 전했다. 토트넘이 계약서에 포함된 1년 연장 옵션을 3개월 내에 발동하지 않으면, 손흥민을 붙잡는 것은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이는 ‘보스만 룰’ 때문이었다.
보스만 룰은 계약이 끝난 선수가 구단 동의나 이적료 없이 자유롭게 팀을 옮길 수 있다는 규정으로, 계약 기간이 6개월 미만으로 남은 선수는 구단의 허락 없이 타 구단과 협상할 수 있다. 협상에 성공하면 그 팀으로 이적하는 것이 자유계약의 핵심이다. 흥미로운 점은 보스만 룰의 탄생 배경이 손흥민의 현재 상황과 유사하다는 점이다. 1990년대에는 계약이 만료되더라도 기존 구단의 동의가 없다면 이적할 수 없었고, 선수들은 불리한 조건의 재계약을 받아들여야 했다. 따라서 손흥민을 원하는 팀이 없을 것이라던 토트넘은 큰 충격을 받았다. 토트넘은 손흥민의 연봉이 과하다고 판단했을 뿐, 방출할 생각은 없었다는 게 내부자의 의견이다. 손흥민이 없는 토트넘은 중위권에서 추락할 위험이 컸고, 손흥민 덕분에 토트넘을 선택한 유망주들도 등을 돌릴 가능성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레비 회장은 소규모 언론사를 통해 손흥민이 아틀레티코로 이적할 가능성을 일축하며, 모든 것이 루머에 불과하다는 보도를 흘렸다. 아틀레티코는 최근 선수 영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손흥민이 에이징 커브에 접어들었고, 토트넘을 떠날 가능성은 낮다는 식의 반응이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오류가 있었는데, 손흥민은 유럽 리그에 남고 싶다고 했지, 잉글랜드 리그에만 남고 싶다고 한 적은 없었다. 무엇보다 손흥민은 우승에 대한 열망이 강하고, 아틀레티코는 세계적인 명장 디에고 시메오네가 이끄는 팀으로,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를 위협하는 클럽이었다.
놀라운 점은, 아틀레티코가 손흥민에게 현재 토트넘에서 받고 있는 주급 3억 원 이상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는 것이다. 아틀레티코는 맨시티로부터 알바레스를 1110억 원에, 첼시의 코너 갤러거를 622억 원에 영입하는 등 다시 한번 유럽 정복을 노리고 있었다. 손흥민은 토트넘에서 10주년을 맞이하며 411경기에서 164골 84도움을 기록했고, 프리미어리그에서는 340경기 120골 62도움을 기록했다. 이는 토트넘의 역사적인 기록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