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트넘 방문 이후 일본 언론들은 자국 축구 선수들에 대해 씁쓸한 감상을 쏟아냈습니다. 마음속으로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지만, 직접 눈앞에서 손흥민의 스타성을 목격하니 너무나 비교되는 것이었죠. 지난 수십 년간 일본 축구계 최우선 과제는 바로 한국을 꺾는 것이었습니다. 일본 축구계는 엄청난 장기 프로젝트를 준비하여 유럽 스페인의 패스 축구를 벤치마킹하고 유럽 지도자들과 코치들을 일본 축구계로 끌어들이는 등 엄청난 투자를 하여 아시아 축구의 맹주가 되기를 꿈꿨습니다.
그래도 헛돈만 써온 중국과 달리 일본은 나름 성과를 내는 축에 속했습니다. 2011년에는 아시안컵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2018 월드컵과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연속으로 16강에 진출하기도 했죠. 그러나 그들은 결국 한국 축구계가 이루어낸 2002 월드컵 4강 신화를 넘을 수 없었습니다. 일본 축구계는 예전부터 전 세계를 사로잡을 만한 스타플레이어를 꿈꿔왔는데요.
한때 일본 축구 팬들이 가장 좋아하고 동경했던 리그는 바로 이탈리아 세리에A였고, 남들과 다른 특별한 선수를 이탈리아에서는 판타지스타라고 불렀습니다. 그 당시 세리에A를 지켜보며 꿈을 키웠던 일본 축구 선수들은 로베르토 바조나 델 피에로처럼 10번 유형의 공격형 미드필더를 꿈꿔왔고, 실제로 일본에서 이름을 날린 축구 선수들을 보면 나카타 히데토시나 혼다 케이스케, 카가와 신지 같은 플레이메이커 성향의 선수들이 많았던 것을 알 수 있죠. 그들은 판타지스타라고 칭할 만한 특별한 존재가 일본 축구계에 등장하기를 지금껏 바라왔습니다. 그렇기에 일본에서 주목받는 유망주가 하나 나왔다 싶으면 그 선수는 거의 국가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성장했고, 일본 축구계와 언론들은 거의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한 명의 선수를 향해 전폭적인 후원을 해주곤 했습니다.
일본에서 인기를 끄는 축구 만화만 보아도 300명에 가까운 선수들을 격리된 트레이닝 시설에 가두고 훈련시켜 마지막으로 단 한 명의 스트라이커만 살아남는다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이런 것만 보아도 일본 축구계는 지금까지 전 세계를 매료시킬 특별한 월드클래스 스트라이커를 간절히 바라왔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리고 최근에는 그들의 기대를 나름 부흥시켜줄 만한 재능들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미토마 카오루는 2022-23 시즌 전반기에 엄청난 활약을 보이면서 일본 언론에서는 미토마가 이적한 지 불과 6개월 만에 아스널 혹은 맨유로 이적한다는 루머를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일본 언론들이 띄워줬던 선수들이 대개 그렇듯이 미토마는 전반기가 끝나고 후반기부터는 서서히 힘이 빠지기 시작했고, 지난 시즌은 부상 악재까지 겹쳐 이적 루머는 쏙 들어가고야 말았죠. 한때는 손흥민의 대항마로 내세웠는데 곧바로 하락세에 접어들자 그들은 이제 미토마 대신 쿠보 타케후사를 내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여름 시즌 시작도 전부터 쿠보가 리버풀로 향한다는 깜짝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유럽 언론들마저 앞다투어 이 사실을 다룰 정도였으니 일본 팬들은 이번에야말로 정말 일본 공격수가 빅클럽으로 진출하는 거냐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죠. 하지만 참 부끄럽게도 이 모든 루머의 근원지는 전부 일본의 스포츠 매체들이었습니다. 유럽에서 가장 존경받고 공신력이 있는 스포츠 기자인 파브리지오 로마노가 “쿠보와 리버풀 간의 이적설은 허상에 가깝다. 일본 측에서만 소문이 무성할 뿐 리버풀 관계자, 레알 소시에다드 현지 기자들과 접촉한 결과 사실무근이다”라고 적었는데, 여기에 또 일본 현지 스포츠 기자가 로마노의 정보는 틀렸다며 1대1로 반박하고 나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포츠 기자와 누군지도 모를 일본의 스포츠 기자의 어처구니없는 맞대결 구도가 만들어지기도 했죠.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레알 소시에다드 보드진으로부터 리버풀과 접촉이 일절 없었다는 직접 발언이 나오자 그동안의 루머가 전부 일본 스포츠 기자들의 언론 플레이라는 것이 밝혀졌고, 이 모든 부끄러움은 일본 축구 팬들의 몫이 되었죠. 일본 축구계에 있어 손흥민 같은 공격수는 항상 선망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지금까지 시도 때도 없이 손흥민을 향해 시기 질투의 기사만 쏟아내었던 그들이지만, 정작 손흥민을 소개할 때 “아시아 첫 프리미어 리그 골든부츠 선수”라고 소개하는 것을 보면 그들이 아시아에서 두 번 다시 나오기 힘든 기록을 달성한 이 월드클래스 공격수를 보유한 한국을 부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게다가 성품까지 완벽하니 그들 입장에서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존재라고 할 수 있는데요. 오타니 쇼헤이가 인기가 많은 이유는 기본적으로 그 뛰어난 실력도 있겠으나, 사생활에 있어서 모난 점이 없고 일본 국민들 모두가 호감을 살 만한 성격이기 때문입니다.
술 담배를 하지 않고 매일 같이 야구에만 미쳐있는 스포츠 청년이고 팬들을 향한 깍듯한 자세와 프로다운 태도는 오타니가 일본 내 다른 스포츠 선수들과는 격이 다른 존재로 올라설 수 있었던 이유였죠. 그런 점에서 보았을 때 손흥민 선수는 국적만 다를 뿐 일본인들에게 있어서는 거의 축구계의 오타니로 여겨지는 중입니다. 겸손한 자세로 유럽 현지에서 가장 많은 호감을 사고 있는 축구 선수이며, 손흥민의 선한 영향력 덕분에 다른 아시아 선수들마저 덩달아 수혜를 입고 있을 정도니까요. 심지어 최근 일본 축구 선수들은 도덕적으로 결함을 보일 때가 많아 사건 사고가 터져 나올 때마다 일본 축구 팬들은 손흥민을 다시 소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아스날의 도미야스 타케히로와 레알 소시에다드의 쿠보 타케후사는 지난 1월에 열린 아시안컵을 앞두고 “나에게 주급을 주는 구단은 따로 있다”며 국가대표 차출에 대해 거부감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쿠보는 어린 시절부터 해외에서 살다 와 일본인들과는 문화나 가치관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다른 선수들에 비해서는 일본을 향한 애국심이 그리 강하지 않다고 볼 수 있는데요. 하지만 일본은 그 어떤 곳보다 민족주의가 굉장히 강한 나라이죠. 그들 입장에서는 일개 선수가 국가를 향해 반기를 든 셈이니 이 발언으로 인해 쿠보는 순식간에 국민 역적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대회 도중 이토 준야가 성폭행 혐의에 휘말려 대표팀을 하차하기도 하였으니, 일본 축구 팬들은 일본 언론과 매체들이 어린 시절부터 선수들을 너무 감싸주면서 키워 버릇이 잘못 들었다며 “현재 일본 대표팀에 있는 선수들은 목만 뻣뻣해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안 든다”고 반응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았을 때 손흥민이라는 선수는 일본인들에게 큰 감명을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항상 개인이 아닌 팀을 위해 먼저 움직이고, 이강인 선수와 얽힌 ‘탁구 게이트’ 사건은 일본 언론에서도 크게 다루었습니다. 그러나 손흥민 선수는 국가대표팀이 분열되는 걸 보고 싶지 않아 이강인 선수를 용서했고, 손흥민 선수의 이 품격에 많은 일본 팬들조차 박수를 보냈을 정도입니다.
결론적으로 손흥민 선수는 플레이 스타일부터 외모와 실력, 성격과 인성까지 일본인들이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는 요소로만 구성된 선수라고 할 수 있죠. 그렇기에 평소에는 그다지 관심 없던 일본 축구 팬들이 손흥민이 온다고 하니 곧바로 공항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시에 브라이튼의 미토마도 브라이튼과 함께 일본에 입국했는데, 대표팀의 에이스이자 자국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적은 수의 일본 팬들만 공항으로 마중 나왔습니다. 일본 언론은 이 압도적인 스타성의 차이, 지금까지 스타플레이어 하나를 키워 오기 위해 일본 축구계가 총력을 기울여 왔지만 아시아에서 ‘판타지스타’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한 선수는 오직 손흥민뿐이라는 것을 결국에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지어 손흥민은 일본 주최 측에게 막대한 수익까지 안겨다 주었는데요. 이미 비셀 고베와의 친선전 티켓이 모두 동나 버렸고, 손흥민의 광고 효과를 노리고 각종 기업들의 스폰이 달라붙어 이미 주최 측이 토트넘에게 지불한 200억 원의 계약금을 이미 아득히 추월해 버렸다고 하죠.
사실 이번 시즌에는 코파 아메리카와 유로로 인해 주전 선수들이 꽤나 빠진 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수익을 냈으니 손흥민 1명의 상업 효과가 대단하다 할 수 있습니다. 일본 주최 측은 돈맛을 보자 내년 여름에도 다시 한번 손흥민과 토트넘을 일본으로 부르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번에 지불한 금액의 2배인 2천만 파운드를 약속했다고 하죠. 하지만 만약 손흥민이 부상으로 빠지거나 프리시즌 직전 이적해 버린다면 이 모든 계약은 무효로 돌아간다는 추가 조항까지 넣어놨다는데요. 그만큼 손흥민 1명이 토트넘이라는 구단 전체보다도 위대하다 볼 수 있고, 아니면 혹여나 손흥민이 다음 여름 어딘가로 이적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 같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토트넘이 손흥민과 1년 계약 연장 옵션을 체결한다고 떠들어 대더니, 정작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계약 상황과 관련하여 진전된 것이 없습니다. 토트넘 측은 혹여나 다음 여름 계약 종료 직전 연장 옵션을 발동시킨 뒤 마지막으로 손흥민을 고가의 이적료에 판매할 절호의 기회라고 내다보는 걸 수도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