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서의 인도 감독 부임으로 또다시 아시아 축구판이 들썩이는 가운데, 베트남 못지않게 절망하는 국가가 있었습니다. 지난 3년간 박항서 영입을 위해 판을 짜던 중국이었습니다. 베트남 감독 사임을 마지막으로 두문불출하던 박항서의 충격적인 행보가 큰 이슈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27일 인도 일간지 타임스 오브 인디아에 따르면 전인도축구협회는 국가대표팀 감독직에 214명이 지원했다고 밝히면서도 그중 가장 주목받는 후보로 박항서가 있다고 폭탄 발표를 날린 것인데요. 현재 AIFF 측은 내달 3일까지 지원자를 받은 후 본격적인 감독 선임 작업을 시작할 예정이라 밝혔지만, 박항서 감독의 지원 사실이 인도 전역에서 워낙 뜨거운 반응을 낳고 있어 사실상 그가 차기 감독에 낙점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뉴스도 쏟아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더 충격적인 건 보통 협상의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루머로 치부되는 게 보통인데, 박항서 감독도 인도축구연맹과의 접촉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는 것인데요.
박항서 감독의 대리인에 따르면 “서남아시아는 아직 한국 지도자가 경험해보지 않은 곳이라 가능성이 높은 곳이라고 생각한다”며 “충분히 고려할 만한 가능성이 있는 시장”이라는 등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타임스 오브 인디아 측은 “AIFF가 이미 박항서 감독에게 엄청난 매력을 느끼고 있다”면서도 “이는 인도 축구의 좋은 징조”라고 말하는 한편, 일부 지상파 방송사들은 베트남에서 박항서 감독이 일궈낸 활약상을 특집으로 내보내는 등 설레발을 치기도 했습니다. 다만 한 가지 걸림돌이 있었다면 베트남에 부임하기 전과 다르게 박항서 감독의 몸값이 최소 10배 이상 부쩍 뛰어오른 상태고, 때문에 AIFF 측은 그의 높은 연봉을 경계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인도 축구팬들이 이토록 뜨거운 반응을 보인 이유는 당연했습니다. 참고로 인도는 피파 랭킹 101위에 불과할 만큼 동남아보다 축구 변방으로 분류되고 있으며, 당장 2022년 베트남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0 대 3으로 대패할 정도로 형편없는 실력으로 악명 높았습니다.
중국보다 인구가 많은 인도에서 공을 잘 차는 11명을 뽑기가 이토록 어렵냐는 비난이 쏟아지자 결국 인도 정부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축구를 부흥시키겠다는 일념 하에 여러 방면에서의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고 선언했는데요. 하지만 그 결과는 참혹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사실 인도 축구가 처음부터 약체였던 건 아닙니다. 축구 종주국 영국의 가장 큰 식민지였던 만큼 그 시절에 가락이 남아있던 1960년대 중반까지는 아시아에서 꽤나 강호 축에 들었는데요. 1950년 월드컵 본선에 진출할 뻔한 적도 있었으며, 1938년 월드컵에 처음으로 진출했던 동인도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 진출이자 아시아 국가로서 사상 첫 본선 진출을 성공시키는 쾌거를 이룰 뻔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인도 측에서 준비가 빠듯하다는 이유로 월드컵보다 2년 뒤 열리는 헬싱키 올림픽 본선 대회에 집중하기로 하며 본선 진출권을 반납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바람에, 4년 뒤인 1954년 월드컵 16개국 본선에 진출한 한국이 아시아 독립국으로써 월드컵 본선 첫 진출국 타이틀을 얻게 된 것이죠. 인도 축구는 정확히 이때부터 내리막을 걷기 시작합니다. FIFA는 어이없는 이유로 기권한 인도의 다음 월드컵 참가 자격을 박탈하는 처벌을 내렸는데, 자존심만 강했던 인도는 이에 반발하여 1982년 월드컵까지 아예 지역 예선을 불참하는 악수를 범하고 맙니다. 1960년대 중반 이후로부터 인도는 본격적으로 세계 축구 흐름에 뒤처지기 시작하는데요. 축구 실력이 쇠퇴하기 시작하여 1986년 월드컵 지역 예선에 36년 만에 출전했지만, 1차 예선에서는 방글라데시, 태국, 인도네시아에게 2승 3무 1패를 거두며 조 2위로 탈락했고, 1990년 월드컵 예선도 사실상 본선 진출이 어려워지자 아예 불참해버리는 기행을 보입니다.
이후 무려 40년간 단 한 번도 최종 예선에 올라가지 못하고 있으며, 2014년 브라질 월드컵 2차 예선에서 아랍에미리트에게 1무 1패로 탈락할 정도로 무기력함만 보이고 있었죠. 다만 인도의 축구 DNA가 완전히 사라졌던 건 아닌 모양입니다. 남아시아 챔피언십 대회에서는 9번이나 우승한 최다 우승 국가로 적어도 인도 근처 지역에선 강호인 셈인데요. 현재까지 남아시아 축구대회가 개최된 건 총 14번이었으며, 이 중 9번을 우승할 정도로 근방에선 따라올 자가 없다는 게 중론이었습니다. 2013년 네팔에서 열린 대회 결승에서 아프가니스탄에게 0대 2로 패하며 일곱 번째 우승은 실패했지만, 2015년 대회에서 다시 아프가니스탄을 제치고 우승했고, 2021년과 2023년 대회도 우승으로 마무리하며 최다 우승 기록을 갱신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이런 지역 대회에서 아무리 우승을 많이 해봤자 우물 안 개구리일 뿐, AFC 챌린지컵 대회 정도로만 올라와도 동네북이 되기 일쑤였는데요.
최근 축구력이 올라오고 있는 베트남과 태국에 심심하면 박살 나는 것도 모자라 2010년과 2012년엔 2번 연속으로 북한에 3점 차 이상 대패하기도 했습니다. 축구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줄 해외파가 한 명도 없고 외국인 감독들도 고개만 절레절레하는 절망적인 상황에 발등에 불 떨어진 인도는 결국 2014년 슈퍼리그를 출범시키면서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하는데요. 그런데 인도 슈퍼리그는 예상 외의 큰 흥행을 거두는 데 성공합니다. 막대한 스포츠 자본이 몰린 이유도 한몫했지만, 은퇴를 앞둔 뛰어난 레벨의 유럽 선수들이 진출하면서 단숨에 축구 팬들의 관심을 끌었고 덕분에 당초 3개월짜리 초단기 리그로 계획했던 슈퍼리그는 아예 연중 정규 리그화가 되어 나름대로 남아시아에선 최상위 리그 지위를 확보하게 됐습니다. 인도 선수들도 더욱 좋은 대우를 받으면서 자국 리그에서 뛸 수 있게 됐지만 한 가지 문제가 발생했으니 슈퍼리그 출범 후 10년간 국가대표 수준을 끌어올리려 해도 도무지 성과가 나오지 않았던 겁니다.
급기야 2023년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무득점 전패로 참가국 중 압도적 꼴찌로 탈락하면서 안 그래도 낮았던 FIFA 랭킹이 곤두박질치자 이때부터 인도축협은 눈에 불을 켜고 명장을 모셔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시작합니다. 다만 시기상으로 인도는 운이 좋았습니다. 정확히 이 시기에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을 마지막으로 휴식기에 들어갔고 그는 한국과 베트남 양국 중 어디든 감독으로 부임할 일은 없을 거라 장담했기 때문인데요.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의 차기 축구대표팀 감독 자리가 여전히 공석으로 남아있는 가운데 국내파 감독 중 박항서는 가장 유력한 후보 중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축구 변방이라 불리는 베트남을 단 2년 만에 동남아 최강 팀으로 만든 데다 과거 히딩크의 전략을 200% 흡수한 그가 감독을 맡을 시 한국 축구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국내 팬들의 염원도 한몫했는데요. 그러나 박항서 감독이 태극전사를 이끌 축구대표팀 사령탑이 될 가능성은 현재로써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며 이와 관련해 박 감독에 대한 미련을 갖는 축구 팬들의 뼈를 때리는 발언이 관심을 끌었습니다.
실제로 박항서 감독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향후 거취를 고민 중이라면서도 한국에서 지도자나 행정가로 일할 생각은 없다고 분명히 말했으며 성격상 본인이 공개적으로 한 말을 뒤집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엔 자신보다 훌륭한 후배와 동료들이 많이 있고 때문에 특별히 한국에서 할 일은 없다고 판단한다. 게다가 5년간 한국을 떠나 있어서 현장감도 떨어지며 특히 해외에서는 말이 통하지 않는데 어떻게 자신이 행정가를 하겠나. 무엇보다 자신은 행정 능력이 없기 때문에 받아주지도 않겠지만, 자신도 그럴 생각은 전혀 없다”며 여러 루머들을 사전에 차단하려 시도하기도 했죠. 한편, 박항서 감독의 인도 부임 소식에 경악한 건 비단 한국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베트남 팬들은 박 감독이 말은 그렇게 했어도 내심 언젠가 베트남으로 복귀할 거라 믿었지만 희망이 산산조각 나자 격분한 반응을 보였고 비밀리에 박 감독에게 러브콜을 보냈던 중국은 하필 다음 행선지가 최근 갈등을 빚고 있는 인도라는 점에 상당히 충격적인 반응입니다.
중국 네티즌에 따르면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에서 보여준 축구 전술과 기술, 인간미 모든 것이 만점에 가까웠다. 트루시에가 1년 만에 박 감독이 쌓아 올린 모든 걸 말아먹었다는 걸 봤을 때 박항서에겐 보이지 않는 뭔가가 있는 게 분명하다.” 중국 환구시보는 이례적으로 박항서 감독을 영입하려 했던 진짜 이유를 언급했는데 그의 존재가 한마디로 중국을 가장 위험하게 만들 수 있는 감독 중 하나였다는 겁니다. 해당 매체는 “박항서를 U-23 대표팀에 선임하면 중국 축구대표팀은 적어도 싱가포르나 태국 같은 팀을 상대로 고전하지 않을 것이며 무엇보다 박항서 감독을 상대할 가능성 자체를 없앨 수 있다.
만약 박항서 감독처럼 중국 축구를 잘 아는 감독이 인도에 부임하게 된다면 안 그래도 인구적인 측면에서 밀려 흉흉한 분위기 속에 13억 중국인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을지도 모른다. 아직 인도가 박항서 감독을 정식 선임하지 않은 만큼 지금은 중국축구협회가 그를 설득하기 위해 어떻게든 많은 돈을 써야만 한다.”실제로 그는 과거 베트남에 가기 전에 중국 진출을 꿈꾸기도 했으며 “여러 가지 신화를 써 내려간 그를 붙잡지 못한 것이야말로 현재 중국 축구가 장기적인 위기에 빠져든 핵심 이유”라 일침을 가하기도 했죠. 지난 3년간 박항서 감독의 일거수일투족을주목하고 있던 중국. 인도가 낚아채기 전에 그들이 마지막 기회를 살려낼 수 있을지, 오랜 기간 박항서 감독을 추천한 중국 언론의 혜안이 과연 현실화될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