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아닐 거라 믿었다. 결국 이번 결정에 한국 축구는 30년 전으로 후퇴할 것이다. 최근 뜬금없는 홍명보 감독 내정으로 논란이 거세지는 가운데 그를 겪어본 선수들의 폭로가 쏟아지며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큰 위기에 봉착하고 있습니다. 현재 그의 사령탑 복귀를 비판한 인물은 박주호 전략강화위원회 위원과 이영표 해설위원, 그 외 박문성 등 축구 관련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데요.
축협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인물들의 보이콧도 놀랍지만 2014년 당시 그의 지도 아래 뛰었던 선수들의 폭로 내용은 충격적이기 그지없었습니다. 재차 익명을 요구한 이들 선수들은 홍 감독의 복귀는 철저히 축협이 짜 놓은 덫이며 심지어는 이를 의도적인 한국 축구 파괴 행위라고 비난을 쏟아내고 있는데요. 한 선수는 홍 감독이 현재 정몽규 축협 회장의 바통을 이어받아 실권을 장악하려 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한국 축구에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뒷전으로 밀리게 될 것이다.
이는 22년 전 히딩크 시절 때부터 이어져 온 한국 축구의 오랜 개혁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것은 물론 안 그래도 저출산으로 선수 수급이 어려운 순간에 골든타임을 놓치게 만들 결정타가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당시 선수들이 눈으로 보고 겪었던 믿기 힘든 사건들의 실체였는데요. 과연 홍명보를 저격한 선수들은 누구고 당시 어떤 사건들이 있었는지 추적해 보겠습니다. 아시다시피 홍명보는 지난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이후 약 10년 만에 복귀입니다. 그 사이 선수 명단은 여러 번 물갈이가 이루어졌으며 2014년 멤버 중 현재까지 국가대표에서 활약하는 선수라면 지난 1월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활약한 골키퍼 김승규와 수비수 김영권, 마지막으로 대표팀의 캡틴 손흥민 정도를 꼽을 수 있는데요. 분명한 건 언론에서 주목할 정도로 입김이 센 선수는 3명 중 손흥민밖에 없으며 만약 그가 정말로 익명 제보의 주인공이라면 홍명보 감독 시절 사건들은 철저히 그의 시각에서 살펴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당시 홍명보의 논란은 2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 대표팀에서의 이해할 수 없는 선수 구성, 둘째는 축구 외적으로 그의 돌발 행동이었는데요. 일명 의리 축구로 대표되던 홍명보호는 브라질 월드컵이 열리기 몇 달 전부터 많은 축구팬들의 우려를 낳았습니다. 오죽하면 대다수의 축구 팬들은 2014년 5월 최종 엔트리가 발표된 시점부터 브라질 월드컵이 홍명보호 몰락의 기점이 될 것이라고 예견했을 정도인데요. 아니나 다를까 결국 그러한 예견은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당시 홍명보호의 최종 엔트리는 2012년 런던 올림픽 때 뛰었던 선수들이 대다수였습니다. 문제는 이 선수들 중 월드컵이 열릴 무렵까지 소속팀에서 제 몫을 해주고 있던 선수가 거의 없었다는 점으로 이는 당초 홍명보 본인이 내세운 소속팀에서 활약하는 여부에 따라 국가대표팀에 선발하겠다는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었는데요.
물론 선수 선발은 감독 고유의 권한이라지만 본인이 내세운 원칙을 본인 스스로가 깨버리는 것은 국가대표팀을 응원하는 축구팬은 물론이고 소속팀에서의 꾸준한 활약상으로 눈도장을 받아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월드컵 무대를 밟아보려는 후보들에게 대못을 박는 처사나 다름없었습니다. 최종 엔트리 중에서 가장 논란이 되었던 인물은 바로 박주영인데 당시 박주영은 아스널에서 벤치만 달구고 있었고, 월드컵이 임박했을 즈음은 벤치마저도 못 앉는 신세가 된 지 오래였는데요.
심지어 임대 이적으로 간 왓퍼드에서도 고작 한 경기 선발 출장에 그쳐 실전 감각도 둔화되어 있던 상태였으며 최종 엔트리에 선발되기 전까지 박주영이 치른 A매치라곤 고작 2014년 3월에 열렸던 그리스와의 평가전 한 경기뿐이었습니다. 물론 당시 득점을 하긴 했지만, 그전까지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시험을 거쳤던 다른 선수들을 제치고 국가대표팀에 선발되는 건 어폐가 있었는데요.
이러한 이유 때문에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그전까지 김신욱을 비롯한 다른 선수들을 발탁했던 건 박주영을 발탁하기 위한 홍명보의 사전 작업이었고 계획대로 이들이 신통치 못한 활약을 보이는 것 같으니 1년 동안 뜸을 들여왔던 박주영 발탁을 추진한 게 아니냐는 음모론을 제시하기도 했죠. 그다음으로 논란이 된 인물은 윤석영인데 윤석영 역시 QPR로 이적한 후 레드냅의 눈도장을 받는 데 실패하여 벤치만 주야장천 달구고 있던 선수였으며 박주영 못지않게 실전 감각이 저하된 상태였습니다.
게다가 당시 윤석영의 포지션인 좌측 풀백에는 이미 분데스리가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던 박주호라는 대안이 분명히 있었고, 그럼에도 박주호를 부상이 심하다는 이유로 탈락시키며 굳이 실전 감각이 바닥을 치고 있었던 윤석영을 발탁시킨 건 빼도 박도 못할 의리 축구의 근거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 같은 의리 축구는 5월 평가전에서부터 6월까지 1달 동안 치른 5번의 A매치에서 1무 4패라는 처참한 성적을 거두면서 말로를 알리게 되는데요.
특히 5번의 A매치 중 첫 번째로 치렀던 튀니지와의 평가전에서 손흥민과 이청용을 제외한 나머지는 팬들의 눈을 썩게 만드는 처참한 경기력을 선보였고, 0 대 1로 허무하게 패하자 온갖 축구 커뮤니티는 욕설로 도배되기도 했습니다. 월드컵 전 마지막 경기였던 가나와의 평가전에서도 수비진은 구멍이 뚫렸고 공격진 또한 처참한 모습을 보이며 0 대 4로 먼지나게 털렸습니다.
이토록 개판 5분 전의 모습을 보였는데 본 게임에서 잘할 리가 만무했던 한국 대표팀은 결국 라인을 바짝 내리면서 수비 축구를 구사한 러시아와 1 대 1 무승부를 거둔 것을 제외하고 공격적인 축구에 나섰던 알제리와 벨기에에게는 각각 2 대 4, 0 대 1로 참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유명한 정성룡의 “퐈이야” 사건, 분노한 축구 팬들이 공항에 몰려가 입국한 대표팀에게 호박엿을 던지자 박주영이 이를 주워서 까먹는 듯한 역대급 짤방이 바로 이 시절에 생성된 것이었죠. 흥미로운 건 홍명보호는 당장 성적을 내지 못한 것뿐만 아니라 대표팀에 차출된 유망주들이 일방적으로 희생되었다는 데 있습니다.
홍명보 감독은 런던 올림픽 멤버들을 우대하던 기조의 연장선에서 이제 막 유망주를 벗어난 자원들을 대거 채용하는 악수를 범했습니다. 2002년 황금 멤버들의 물갈이 시기까지 겹치며 신규 자원들이 유독 많았던 시기였고, 실제 정량적으로도 월드컵 참가국 중 나이지리아 대표팀에 이어 두 번째로 평균 연령이 낮은 팀이었습니다. 좋게 표현하자면 젊은 에너지가 가장 돋보이던 엔트리였지만, 신구 조합의 실패로 오히려 유망주들의 앞길을 막는 최악의 한 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엔트리 중 무려 18명이 브라질 월드컵에서 데뷔했을 정도로 햇병아리들이었기 때문입니다. 2회 이상 월드컵에 참여했던 선수는 박주영 단 한 명뿐이었으며, 이마저도 입지상으로 대표팀에 영향력을 발휘할 만한 위치는 아니었습니다. 만 나이로 30대였던 선수는 곽태휘가 유일했지만, 정작 기용해 놓고 단 한 번도 쓰지 않았던 데다 29세였던 이근호가 군계일학의 활약을 보이며 관록의 품격을 보여주면서 어린 선수들의 초라함만 돋보일 뿐이었습니다.
결국 브라질 월드컵 출신 유망주들은 불만에 가득 차 있었고, 이는 21살이었던 손흥민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10명의 유럽파들 중에서 손흥민을 제외하고 월드컵에서 활약한 선수는 아무도 없었으며, 오히려 홍명보 감독으로부터 “B급 선수들”이라는 모욕을 들은 K리그 출신 김승규와 이근호, 김신욱의 활약이 더욱 돋보이자 결국 여론에 못 이긴 홍명보 감독은 당시 중앙 공격수 출신인 손흥민을 윙어로 빼는 대신 김신욱을 중앙 공격수로 기용하게 됩니다.
만약 이때 손흥민이 당당히 자신의 원래 포지션인 중앙 공격수로 활약했다면, 뒤늦게 9번 공격수로 이름을 날린 손흥민의 축구 인생은 크게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브라질 월드컵이 끝난 후 뒷이야기에 따르면 손흥민은 중앙 공격수로 뛰지 못해 제한적인 능력만 발휘한 것이 가장 후회스러운 결정이라고 털어놓았다고 합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축구협회 부회장을 지낸 이영표 해설위원은 “우리가 포르투갈 전력 강화 감독과 전 노리치 감독이었던 바그너, 마지막으로 홍명보 감독 이렇게 3분에게 의사를 물었었고, 원래 절차는 기존에 있는 전력강화위원들과 소통을 하고 난 이후에 발표를 했어야 했다”며 “그 과정이 생략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등 감독 선정에 문제가 있음을 폭로하기에 이릅니다. 또한 감독을 뽑는 데 한 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회의 보안 문제가 제기된 점을 언급하면서 “자신이 볼 때는 이것은 행정적으로 상당히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애초에 국내 감독을 뽑으려 했던 게 아니냐는 물음에 대해서는 부정하면서도 “2002년 월드컵 때 훌륭한 외국인 감독 한 명이 팀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직접 경험했다. 20년 만에 손흥민과 황희찬, 김민재와 이강인 등 황금 세대가 나타났는데 이런 황금 세대에 외국인 감독 한 명이 또 나타난다면 2026년 월드컵에서 정말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있었다”며 사실 외국인 감독이 내정되기를 기대했었다고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번 감독 선임 과정에서 협회가 여러 가지 행정적인 실수를 저지른 게 맞다면, 실수가 반복될 시 그것은 실수가 아니라 실력이 될 수도 있다. K리그 팬들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결정”이라며 “이런 결정이 과연 대표팀에 대한 지지로 이어질 수 있을지 상당히 의문이 들었다. 또한 한국 대표팀을 구해내기 위해 구체적인 변화가 필요하겠구나라는 생각을 떠올리게 됐다”며 자신이 폭로에 가담한 이유를 착잡한 심정으로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온갖 비난 여론에도 끝까지 밥그릇을 놓지 않는 정몽규 축구협회장의 고집을 보자면 다시 한번 한국 축구에 암흑기가 찾아오지 않을까 우려스럽지 않을 수없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