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홍명보의 룸살롱 논란이 일파만파 퍼지는 가운데 그의 또 다른 피해자가 등장하며 축구 팬들이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는 다름 아닌 안정환이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은 한국 축구에 있어 여러모로 의미 있는 이벤트였습니다. 당시 유소년으로 이름을 날리던 손흥민이 마침내 월드컵에 데뷔한 날이었고 2002년 4강 신화의 주역이었던 안정환이 해설자로서 제2의 축구 인생을 시작한 날이기도 했는데요. 해설자로서 다소 호불호가 갈리긴 했지만, 전문적인 축구 지식과 해설 능력, 게다가 동료 해설자인 김성주 아나운서와의 케미가 잘 들어맞아 해설자로서 나름 합격점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문제가 생깁니다. 2014 브라질 월드컵 탈락 직전 벨기에 전을 중계하던 안정환은 경기 양상이 한국에 끔찍하리만큼 불리하게 전개되자 침착했던 목소리는 점차 흥분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해설자로서 해서는 안 될 선수들에 대한 질책까지 하는데요.
선수들이 무딘 역습을 보이자 “늦어요”라는 말을 연발하며 분발을 강조하더니, 김보경의 패스가 다소 느리게 연결되자 “어차피 패스를 할 것이면 왜 드리블로 시간을 뺏겨 수비수들이 자리를 잡게 만드냐”며 호통을 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결과는 아무것도 못 해보고 한국의 0대 1 패배. 이후 안정환은 선수들의 경기력에 상당히 분노했는지 차마 험한 발언은 못 하고 참는 장면이 연속적으로 노출되며 논란을 자아냅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위태로운 수준이었냐면 당시 시청자들은 안정환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보여 자신들까지 불안했으며 안 그래도 축구 해설자로서 데뷔 날인데 처음부터 대형 사고를 쳐 버려서 퇴출당하는 건 아니냐며 걱정할 정도였는데요. 그의 위태로운 모습은 중계를 마친 후에도 계속됐습니다. 함께 해설했던 김성주 아나운서가 인사할 때도 혼자 눈을 지그시 감고 화를 삭이고 있었으며 그 옆에 있던 송종국도 마찬가지로 무시무시한 표정을 지은 채 분노를 참고 있는 모습들이 나란히 전파를 타기도 했는데요.
처참한 경기력과 무기력한 대패, 특정 선수들의 어이없는 부진으로 인해 최악의 평가가 쏟아질 거란 건 시청자들도 충분히 느끼고 있던 것이었으나 도가 지나칠 정도로 그들을 열받게 만든 진짜 원인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시간이 조금 흘러 한국으로 귀국한 이들은 한 방송에 출연해 브라질 월드컵과 관련된 비화를 쏟아냅니다. 이날 안정환은 무언가 작심한 듯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홍명보에 대한 비리들을 간접적으로 언급하는데요. 그는 홍명보 감독과의 일화에 대해 털어놓으며 둘이 있을 땐 육두문자를 섞어 말하는 게 아주 흔한 일이며 특히 사람들과 있을 때를 유독 싫어했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꺼내 놓습니다. 당시 MC를 맡은 김국진은 “아무리 방송이라도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대놓고 말할 수 있냐”고 되묻자 안정환은 “그럼 눈빛으로 얘기를 해야 되냐”며 평소 홍명보 감독의 표정을 따라 하는 등 주변을 폭소케 했는데요. 함께 방송에 출연했던 송종국도 안정환과 불꽃 튀는 폭로전을 펼치며 선배로서 홍명보에 대한 평가로 “딱히 배울 점이 없다”는 등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당시 방송의 콘셉트상 심각한 분위기는 분명 아니었고 시청자들도 뭔가 찜찜하긴 하지만 유머로 흘릴 만한 요소들이라 딱히 논란으로까지 번지지 않았는데요.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 홍명보 감독이 브라질 월드컵 당시 졸전 끝에 16강 진출에 실패하고도 선수들과 접대부가 있는 술집에 들어가 흥청망청 음주가무를 즐겼다는 사실이 재조명되며 당시 안정환의 발언은 일반인들이 모르는 뭔가가 있을 것이라는 논란이 확산되기 시작합니다. 월드컵 중계 중 안정환이 극도로 분노했던 건 단지 대표팀의 형편없는 경기력 때문만이 아니라 감독으로서 홍명보에게 어떤 문제가 있지 않았다면 귀국하자마자 방송에 출연해 아무리 농담조라도 홍명보를 저격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죠. 충격적이게도 안정환이 분노했던 건 2가지 이유로 드러납니다.
먼저 그는 한국 축구가 잘 되길 바라는 사람 중 1명으로서 홍명보가 한국 축구에 저지른 각종 만행들에 가장 크게 실망한 사람이자 월드컵 방탕으로 벌어진 음주가무의 추태와 관련해서도 과거 홍명보에게 소위 못 볼 꼴을 당한 피해자였다는 놀라운 사실이 밝혀진 겁니다. 브라질 월드컵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문제의 발단은 조광래 전 감독 해임 사태 때 등장했습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직후 국대에 취임한 조광래 감독은 선수 선발을 둘러싸고 기술위와 충돌하여 양자 간 앙금이 쌓여 있는 상태에서 예선마저 부진하자 축구협회는 기술위원회조차 소집하지 않은 채 무작정 그를 경질하는 초유의 사태를 일으킵니다. 팀이 부진하다면 기술위원은 문제점을 분석해서 선수가 문제면 선수를 바꾸고 감독이 문제면 감독을 바꾼다던가 지원 스태프에 문제라면 이를 갈아치우는 게 정상적인 과정이었지만 축구협회는 문제점 분석과 대책 수립이라는 과정을 아예 생략해 버리고 그저 대든다는 이유만으로 절차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감독부터 날려 버린 것인데요.
아시다시피 후임으로 최강희 감독이 부임하자 한국 축구는 수십 년 만에 월드컵 예선에서 탈락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뻔했습니다. 반드시 이겨야 했던 최종 예선에서 이란에게 패배하자 안 그래도 불안정했던 축구 대표팀의 분위기는 최악으로 치달았습니다. 어찌어찌해서 본선 진출에 성공하긴 했지만, 애초에 이런 사태부터가 축구협회의 잘못된 운영 방식이 아니었다면 발생 자체를 안 했을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 예선전이 한창 진행 중인데 아무런 대안도 없이 일단 감독부터 경질해 놓고 다급해지니 본인이 하기 싫다는 최강희 감독을 그것도 인맥으로 국대 감독에 눌러앉혔기 때문입니다. 당시 최강희는 전북 감독 자리에 애착을 보이면서 국대 감독 자리를 영 내켜 하지 않았으나 사방에서 압력이 들어오자 “예선까지만 국대를 맡겠다”는 시한부 조건을 내걸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 시한부 조건이라는 게 “자신은 진짜 진짜 하기 싫으니 제발 시키지 마라”라는 식의 아주 완곡한 표현이었다는 것입니다.
축구협회가 이런 말도 안 되는 반강제적인 접촉으로 덜컥 감독에 앉혀 버리니 상황이 더 꼬일 대로 꼬일 수밖에 없었던 건 당연했죠.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 안정환을 진짜로 분노하게 한 건 대표팀의 접대부 사건이 보도된 직후였습니다. 정확히 이 사건이 방송에서 홍명보에 관한 폭로를 하기로 마음먹은 기폭제가 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선수 시절 홍명보에게 비슷한 문제로 불미스러운 경험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선수들의 음주 가무가 일상이었던 시절, 당시 술자리에서 선수들이 가장 동행하길 원했던 인물이 누구였을까요? 바로 ‘테리우스’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던 안정환이었습니다. 선수들이 술자리 최고의 파트너로 안정환을 지목한 것은 그가 어딜 가든 인기 넘버원이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잘생긴 외모에 CF를 통해 주가를 올리고 있는 안정환을 직접 만나보려는 접대부들이 워낙 많은 탓에 안정환의 등장 여부에 따라 서비스를 달리하는 탓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선수들은 어떻게든 안정환을 술자리에 데려가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는 풍문이 돌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안정환은 당시 이런 술자리를 끔찍이도 싫어했다고 합니다. 얼굴이 널리 알려진 탓에 대중들이 몰려있는 곳은 기피 1순위라는 건 이해할 만했지만, 그는 개인적으로도 유흥보다 친한 지인들과의 만남을 선호하는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그도 거역할 수 없었던 선수가 있었으니 그 주인공이 문제의 홍명보였습니다. 월드컵을 치르고 쏟아지는 행사 속에 정신없었던 어느 날, 홍명보는 뜬금없이 선수들에게 집합 명령을 내린 적이 있습니다. 충격적이게도 그 집합 장소는 숙소나 운동장이 아닌 룸살롱이었습니다. 룸살롱으로의 초대에 모든 선수들이 기겁했지만, 대표팀의 최고참이자 다혈질로 유명한 홍명보의 부름을 거역할 선수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현재 고인이 된 유상철 선수는 안정환과 함께 제일 어린 막내 취급을 받는 터라 애교와 갖가지 장기자랑을 도맡아야 했고, 그 자리에서만큼은 대표팀의 위치를 애써 망각하고 선배들의 재롱꾼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선수들 사이에서 안정환은 홍명보의 부름을 외면한 채 사회에서 알게 된 사람들과 술을 마시며 배짱을 튕기기도 했습니다. 그가 초대를 거절한 이유는 술자리에서까지 선후배 간의 위계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부담 때문으로 알려졌습니다. 어렵게 술을 마실 바엔 차라리 아는 사람들과 마음 편히 마시겠다는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처음엔 몇몇 선수들도 호기롭게 그의 자유로운 생각을 추종했지만, 결국 나중엔 모두가 슬그머니 홍명보가 마련한 무대로 이동했다는 후문이 돌기도 했습니다. 당시 언론에서는 이를 ‘밤에도 잠들지 않는 홍명보의 카리스마’라고 예쁘게 포장하여 논란이 되기도 했죠.
자신에게 개인적으로 수치스러운 기억을 만들어준 홍명보가 심지어 감독으로 데뷔한 상태에서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이지는 못할망정 8강에 가겠다고 호언장담하던 사람이 월드컵 광탈이라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받아들이고도, 그것도 현지 접대부까지 고용해 술판을 벌였으니 굳이 안정환뿐만 아니라 홍명보를 잘 알던 박지성과 이영표, 박주호 선수까지 공개적으로 비판한 데는 이런 이유가 한몫했을 겁니다.현재 축구팬들의 비난 속에서 축협은 홍명보를 감독으로 결국 공식 선임했으며, 처음 폭로를 쏟아낸 박주호에게는 예정대로 징계 절차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축구팬들은 이천수와 안정환에게 몰려가 제발 입 닫지 말고 박주호를 지켜달라고 애원하고 있다는데, 비리로 가득한 축협을 상대로 과연 그가 정의로운 선택을 내릴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